고분특징
안동고분 주인공의 출자에 대해서는 토착세력자설, 왜인설, 백제 왕·후설 등이 거론된다. 토착세력자설은 남해안 연안 항로의 길목에 해당하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기항지로 발전하였던 세력, 한군현 시기부터 활동해 왔던 포구세력, 한성시대 최단거리의 간선 교통로와 남해안 연안 항로가 만나는 국제교역항의 지역 세력자, 백제 금동관과 금동신발로 미루어 백제의 지배과정에서 의제적 친족으로 편입시켰던 현지 유력자, 나주 신촌리 9호분의 피장자와 함께 백제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선택·후원된 것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왜인설은 왜계 석곽과 갑주류를 비롯한 무기류 위주의 부장품들로 미루어 그 주인공을 왜인일 것으로 보되 선진문문을 입수하기 위해 파견된 왜인, 백제의 남해안 진출과 관련된 왜계 관료, 혹은 군사집단 등 약간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백제 왕·후설은 현지 세력자이면서 백제가 임명한 왕·후에 해당한다는 견해이다. 크게 보면 토착세력자설에 해당하지만 백제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다. 이 견해에서는 고흥 안동고분 뿐만 아니라 백제계 금동관이 출토된 나주 신촌리 9호분과 함평 신덕고분의 피장자도 왕·후제와 관련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백제의 왕·후제는 왕·후가 임지를 옮겨 다닌다는 점과 『양직공도(梁職貢圖)』에 보이는 방소국(旁小國)에 대해 백제 스스로 자신들과 구분되는 부용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왕·후제와 연결시키기는 어렵다고 보기도 한다.
고인돌내용
모두 32기 가량의 남방식 또는 변형 고인돌이 있는데, 1926년 그 중의 하나에서 무혈구일단병식(無血溝一段柄式)에 속하는 돌검이 발견됨으로써 일본인 학자 고이즈미[小泉顯夫]와 사와[澤俊一]에 의하여 발굴조사가 행하여졌다.
총 4기가 발굴되었는데, 내부구조는 모두 지하에 판상(板狀)의 할석을 차례로 겹쳐 쌓아 네 벽과 바닥을 가진 돌널을 만든 것이고 유물은 전혀 없었다. 또한, 이 고인돌들과 가까운 지점에서 하나의 돌널무덤이 조사되었는데, 이 것도 뒤에 뚜껑돌이 없어진 변형 고인돌로 밝혀졌다.
돌널은 길이 2.85m, 너비 1.3m, 깊이 0.4m로 밑에는 판상의 돌이 깔린 것이다. 돌널바닥의 중앙쯤 되는 곳에서는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동검은 칼끝쪽 절반이 결실된 것인데, 칼몸의 아래쪽이 부채처럼 퍼진 전형적인 요령식동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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